[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북에 없는 기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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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요즘 갑자기 아침과 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어요. 긴팔 카디건을 챙겨 다녀야 할 날씨가 됐는데요. 저는 이맘때쯤이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생각나요.

기자: 구세군은 개신교의 한 교파지만 한국에서는 관련 단체가 겨울마다 빨간 자선냄비를 두고 모금 활동을 벌여서 남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구세군이라 하면 빨간 자선냄비부터 떠올리게 되었죠. 그러고 보니 북한에는 이 같은 기부 문화가 없지 않나요?

이순희: 네, 맞아요. 북한 고향 분들은 기부라는 말도 무척 생소할 거예요. 기부란 남을 돕기 위해 무상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을 뜻하는데요. 꼭 돈이나 물건이 아니어도 기술이나 본인의 재능을 기부할 수도 있어요.

기자: 그럼 한국의 기부 문화는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신 건가요?

이순희: 제가 기부하는 광경을 처음 봤던 건 15년 전 남한 정부에서 배정해 준 배치지로 올 때였는데요. 저같이 배치지로 가는 사람들을 태운 고속버스가 어느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어요. 고속도로 휴게소란 먼 길을 차 타고 가는 사람들이 용변도 보고, 식사도 하고, 잠시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휴게소예요. 그 휴게소 앞에 빨간 외투를 입은 분이 앞에 빨간 냄비처럼 생긴 통을 놓고 종을 치고 있는 거예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고 또 원래 호기심이 많은지라 한참을 쳐다보았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그 통에다 돈을 넣는 거예요. 한두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 본인 지갑에서 돈을 꺼내 넣어요. 그렇게 돈을 넣는다고 누가 이름을 써주는 사람도 없어요. 어떤 아주머니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 돈을 쥐여주고 안고 가서 냄비에 돈을 넣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버스로 돌아와서 배치지로 데려다주는 선생님에게 "왜 사람들이 통에 돈을 넣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한국에는 연말이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자선 단체에서 모금 운동을 하는 게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더 놀랐던 건 그 액수가 몇 백억이 넘는다는 거예요.

기자: 남한의 연간 기부금 절반 이상이 12월에 집중돼 있다 해요. 추운 겨울 날씨에 난방이 어려워 춥고 또 끼니를 해결할 돈이 없어 배고플 이웃들을 걱정해 그만큼 기부금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요. 그럼 기부를 하거나 받아보신 경험도 있으세요?

이순희: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제가 배치지에 왔을 때 선뜻 텔레비전을 주던 이웃 아주머니인데요. 제가 모르는 동네에 처음 왔으니, 이웃들에게 "몇 동에 이사 온 북한이탈주민입니다"라며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저를 처음 본 이웃 아주머니가 "이제 막 이사 왔으면 가구가 하나도 없겠네요?"라면서 "집에서 안 보는 텔레비전이 하나 있는데 보실래요?"라고 묻는 거예요. 그러더니 집에 있던 텔레비전을 저희 집으로 갖고 와주셨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질이 좋은 물건인 것 같아서 공짜로 받기는 미안하니까 돈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속으로는 '텔레비전값을 지불할 돈이 없는데 어쩌나'하는 생각이었죠. 그 아주머니는 제가 이런 걱정을 하는 걸 눈치채셨는지 "아이고, 그냥 보세요"라며 웃으시면서 돌아가는 거예요. 그때 받았던 텔레비전이 고향에서는 비싼 값을 치르고 사야 하는 최신형이었어요. 남한에 와서 처음 틀어보는 텔레비전이었는데 그 텔레비전 속 사람들의 얼굴 잡티까지 선명하게 나올 정도로 텔레비전 화면이 맑은 거예요. 이것도 일종의 기부가 아닐지 싶어요.

기자: 맞아요. 작은 기부도 못 하는 사람은 결국 나중에도 큰 기부를 할 수 없다는 말도 있죠. 그런데 또 돈이나 물건이 아니어도 재능을 기부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재능 기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순희: 재능기부는 자원봉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범위가 정말 다양해요. 피아노 연주,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 무료 공연 등을 할 수 있어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사회에 기부하는 거죠.

기자: 그럼 재능 기부에 참여해 보신 경험도 있나요?

이순희: 저희가 모은 돈을 가지고 연탄을 사서 어렵게 사는 아주머니네 집에다가 연탄을 창고에까지 직접 넣어주는 기부 경험도 있었어요.

기자: 재능을 기부할 수도 있지만, 색다른 기부 방법도 많은데요. 예를 들면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 같은 이색 기부도 접해보셨나요?

이순희: 큰돈이나 재능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기부할 방법이 많더라고요. 남한에서는 소아암 환자들처럼 질병으로 인해 머리가 빠진 사람들에게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도 있는데요. 암에 걸려서 항암치료를 받는 어른이나 어린 나이의 환자들은 그 치료 중에 탈모가 발생하곤 해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가발을 만들려고 염색이나 파마하지 않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서 기부할 수도 있어요. 기부한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서 어른이나 어린아이에게 기부하는 거죠. 또 한국에서는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어요.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면 그다음에 도전할 사람 찾는 거에요. 지목당한 사람은 똑같이 얼음물을 뒤집어써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을 경우 일정 금액 이상 기부를 하는 거죠. 그 사람이 또 다른 세 명을 지목하고요. 이렇게 퍼져나가는 건데 기부 문화를 재미있고 널리 퍼트릴 수 있는 운동 중 하나였어요. 남한 배우, 모델, 가수 등 연예인들과 정치인들도 많이 참여했어요. 이런 문화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죠.

기자: 한국의 시민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부 문화도 활성화됐지만, 아직 전 세계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인데요. 영국자선지원재단(CAF)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19개국 중 88위에 그쳤다고 해요. 1위는 인도네시아, 2위 케냐, 3위가 미국인데요. 아직 한국은 기부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것 같네요.

이순희: 저는 그래도 한국의 기부 문화도 특색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특히 감명 깊었던 점은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하기까지는 한국인들의 피나는 노력과 끝없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도입했기 때문이었잖아요. 특히 남한의 텔레비전, 휴대전화, 냉장고 등 전자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이룩한 성장으로 남을 돕고 있는 게 놀라워요. 한국은 국제기금으로부터 도움받는 나라였는데 20년도 안 돼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번 돈과 재산을 남을 위해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기자: 작은 돈이나 선행이라도 남을 위하는 마음이 중요하죠.

이순희: 작은 봉사라도 계속되면 그 영향력은 정말 커지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영국 배우인 오드리 헵번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두 손이 있는 이유는 너 그리고 타인을 돕기 위해서다"라고요. 그 말처럼 북한 청취자 여러분도 이웃과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더 선행을 베푸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기부 문화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