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김일성이 선물한 ‘산삼 한 뿌리’의 추억

0:00 / 0:00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A,B,C,D,K라는 영어 알파벳을 들으면 해연 씨는 뭐가 먼저 떠오릅니까?

이해연 : 선배님, 혹시 영어 ABCD 다시 배우는 건가요? (웃음)

박소연 : 그럴 리가요! 북한에서는 알파벳이라는 말보다 영어 자모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영어 자모를 노래로 불렀던 기억도 나고요. 그런데 시작부터 알파벳을 소개한 이유는 영어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알파벳이 모든 사람들과 큰 연관이 있기 때문인데요. 혹시 어떤 뜻인지 감이 오지 않나요?

이해연 : 아, 네! 제가 오늘 아침에 알파벳 중에 C를 먹고 왔습니다.

박소연 : 호박씨를 드신 건 아닐 것이고… (웃음)

이해연 : 비타민 C요. 북한에서는 비타민 C는 다 알죠. 선배님이 말씀하신 A,B,C,D,K가 비타민 맞죠?

박소연 : 정답입니다. 요즘 남한에서는 영양제를 안 먹는 사람은 아마 다른 행성 사람일 거예요. 그 정도로 영양제를 많이 챙겨 먹잖는데요, 오늘은 영양제에 관한 얘기를 할까 합니다.

이해연 : 방금 선배님 영양제를 말씀하셨는데, 북한에서도 영양이라는 말은 많이 사용해서 압니다. 다만 영양제라고는 잘 안 하죠.

박소연 : 북한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라는 말들은 많이 했어요. 남한에서는 몸에 필요한 영양 성분들을 다양하게 알약이나 캡슐 또는 가루 등으로 만들었잖아요. 이런 것들을 통틀어서 영양제라고 부릅니다.

이해연 : 제가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영양제를 안 먹고 있을 거로 생각하실 텐데, 실은 저도 생각보다 많이 먹습니다. 아침부터 눈을 뜨자마자 유산균을 먹고, 아침과 점심 식사 후에는 비타민 C와 D를 각각 나누어 먹다가, 지금은 그냥 종합비타민으로 바꾸어 한 알 먹고요. 그리고 저녁에는 콜라겐을 먹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먹고 있습니다.

박소연 : 자기 전엔 또 뭘 드신다고 했죠? 북한 주민들에게 비타민 C나 D는 익숙한데, 유산균이나 콜라겐 같은 말은 좀 낯설 것 같아요.

이해연: 우리 몸에는 균이라는 게 존재해요. 균이라고 하면은 나쁜 균을 먼저 생각하실 텐데, 나쁜 균도 있지만, 유익한 균도 있어요. 유익한 균들만 뽑아서 만든 게 유산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콜라겐이란 말도 매우 생소하실 텐데요. 콜라겐은 세포끼리 서로 연결해 주거나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는 성분이고 피부의 탄력을 강화해 주고 관절염과 동맥경화 방지에도 좋은 영양제라고 합니다. 콜라겐이라는 성분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아주 많아요. 닭 날개 쪽이나 돼지 껍데기 같은 부분 그리고 장어나 가자미, 상어 지느러미에도 많습니다.

박소연 : 주로 피부에 좋은 건 알아요. 콜라겐이 피부 탄력을 높여준다고 해서 탄력 화장품에는 많이 들어가는 성분입니다. 해연 씨가 평상시에 복용하는 영양제를 살펴보면 유산균 복용으로 소화도 잘되고 면역력도 높이고, 종합비타민은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 먹고, 콜라겐은 피부를 위해서?

이해연 :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 그런 효과를 기대하고 먹는 것이죠. 여자들은 20대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미리미리 예방 차원에서 챙겨 먹고 있습니다.

박소연 : 그래서 남한의 20대들이 영양제를 많이 먹나 봐요. 해연 씨는 평균에 비해 많이 먹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이해연 : 네, 주변에 영양제를 챙겨 드시는 분들을 보면 거의 한 줌씩 드시더라고요. 저렇게 많이 먹으면 흡수가 될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그럼 선배는 어떠세요?

박소연 : 저도 비슷하네요. 아침에 눈 뜨면 유산균 그리고 밥을 먹고 종합비타민을 먹고, 저녁에 녹용을 먹습니다. 아, 한 가지 빼먹었는데 아침에 'ABC 주스'라는 걸 먹습니다. 사과, 당근, 비트라는 빨간 무가 있는데 이 세 가지를 합쳐서 갈아 만든 걸 ABC 주스라고 부릅니다. 몸 안에 독소를 뽑아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그래서 이걸 안 마시면 온종일 꺼림 직한 거예요. 마치 내 배 안에 독소들이 자리를 틀고 앉을 것 같이… (웃음) 저녁에는 녹용을 먹는데, 그 이유는 잠이 잘 옵니다. 해연 씨, 녹용 알죠?

이해연 : 북한에서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먹어볼 일은 없었습니다.

박소연 : 녹용은 사슴뿔인데 북한에서는 1호 선물로 올라가는 귀중한 약재입니다. 일반 주민들이 녹용을 사려면 정말 큰돈을 들여야 살 수 있고, 그것도 귀하다 보니까 개인들이 가짜 녹용을 만들어 팔기 때문에 사서 먹어도 효과가 없다는 소문들이 많았어요. 남한에 와서도 영양제를 챙겨 먹고, 몸에 좋은 걸 먹어도 녹용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지인이 추천해줘서 먹어봤는데 저에게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해연 : 다행이네요. 남한 사람들은 홍삼을 많이 먹어요. 홍삼은 5년 이상 자란 인삼을 쪄서 말린 후, 그걸 달여서 엑기스나 분말 형태로 팔고 있는데요. 홍삼에는 사포닌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면역력이 좋아지고 노화 방지에도 매우 좋다고 합니다. 저도 주변에서 이런 효과가 있다고 권해서 챙겨 먹고 있긴 한데, 자주 먹는 것보다 추울 때 먹으면 추위도 안 타고 좋다고 해서 겨울철에만 먹습니다.

박소연 : 저는 남한 정착 초기에 빈혈이 와서 쓰러진 적이 있는데, 병원에서 영양실조라고 하는 거예요. (웃음) 아니 북한에서도 영양실조 걸려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남한에 와서 영양실조에 걸렸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사실 그때가 오뉴월인데 너무 더웠어요. 하나원에서 퇴소한 직후라 놀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바로 아르바이트 일을 하다 보니까 더위에 적응이 안 됐고 밥도 거의 안 먹었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홍삼을 권했는데… 저는 먹으니까 얼굴에서 열이 막 나는 겁니다. 혼났어요. (웃음) 다신 안 먹습니다.

이해연 : 약도 본인의 체질에 맞아야 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홍삼을 먹으면 겨울철에 감기가 잘 안 걸립니다. 느낌일 수도 있는데 일단 그렇게 느껴져서 겨울마다 챙깁니다.

박소연 : 북한은 산삼이나 인삼 등을 남한처럼 정교하게 가공해서 먹지 않아요. 인민학교 다닐 때 김일성 원수님 배려로 전국의 학생들한테 어린 산삼을 선물로 줬어요. 저는 꿀에 재서 뿌리는 씹어먹었는데요. 산삼을 먹으면 한겨울에 치마 위에다 동복을 안 입어도 안 춥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결국 오는 감기, 가는 감기 다 앓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제가 탈북 전에는 북한 내부에서 인삼을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개성에서 인삼을 재배하지만 지방에서는 인삼을 구경하기 힘들었습니다. 대신에 국경 지역에 사는 일부 청년들이 중국에 몰래 넘어가 장백현 쪽 인삼 농장을 습격해 인삼을 몰래 훔쳐 왔어요. 그리고 훔친 중국 인삼을 시장에서 약초 파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넘겨줬어요. 북한은 인삼을 생으로 보관할 수 있는 환경이 못돼 전부 말려서 팔았는데 가격은 개성 인삼보다 눅어서 그때 인삼이라는 걸 다들 구경했죠.

이해연 : 북한에서는 인삼을 술에 재워 먹거나 꿀에 재서 먹거나 하는데요, 어쨌든 아주 비싼 약이죠.

박소연: 남한도 과거에는 인삼을 비롯한 건강에 좋은 약초들을 많이 먹었다고 해요. 시대가 발전하면서 약초를 가공해 포장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쉽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죠. 편의점에 가보면 계산대 앞에 쭉 짜 먹을 수 있는 홍삼포가 진열돼 있어요. 그만큼 대중화가 된 거죠.

이해연 : 홍삼만 파는 가게도 있잖아요. 그만큼 많은 사람이 챙겨 먹는다는 거죠. 홍삼뿐 아니라남한은 현재 영양제 종류가 정말 엄청나게 많아요. 선배님이 탈북해서 남한에 처음 왔을 때도 이렇게 종류가 많았습니까?

박소연 :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홍삼도 있었지만 다른 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들 이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먹고 있는 영양제를 말하라고 하면,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줄줄 나와요. 얼마 전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 TV 예능 방송에서 20대 초반인 영화배우가 아침에 일어나서 영양제만 손에 한가득 먹는 걸 봤는데요. 그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겁니다.

이해연 : 그거에 비하면 저는 정말 기본만 먹는 것입니다! (웃음)

박소연 : 시대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그만큼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건강하게 살려면 어려서부터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100세 시대에 면역력을 키워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해요. 그래서 영양제가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그러나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영양제를 한 줌씩 먹는 것이 과연 좋을까요? 저는 가끔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클로징] 제가 어릴 때 동네 어르신들이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몸이 따라 서지 못해 속상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외우셨어요. 그때는 코웃음을 치며 지나쳤는데, 오십이 되니 그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만큼 몸도 젊어지려고 영양제를 꼭꼭 챙겨 먹는데요, 저뿐이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은 남한 사람들이 한 달 평균 지출하는 영양제 가격을 들으면 놀라실 것 같은데요, 그 뒷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 제작: 이현주 에디터: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