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지난 시간에 대한민국에서 인기 최고인 5대 이모님 중 식기 세척기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개인적으로 시영이가 제일 좋아하며 자주 이용하는 이모님을 소개해 드릴게요. 바로 빨래건조기인데요. 이불 두개가 들어갈 만큼 큰 용량이랍니다.
시영이가 두명 들어가도 될 만큼 넉넉한 크기라 저는 빨래건조기를 만들어낸 분들에게 늘 고맙답니다. 하루에 3시간 정도 수돗물이 나오는 평양에서 늘 화장실에는 몇 톤씩 되는 물탱크를 설치하고 세탁기는 한번도 수도꼭지를 연결하고 사용한적 없이 소랭이에 물을 넣고 돌리고 또 넣고, 세탁기 한번 돌리려면 팔힘을 엄청나게 써야 했지요.
하지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베란다에 세탁기와 빨래건조대를 설치 하게끔 수도꼭지와 배수구가 있고요. 수돗물이 끊기는 일이 없어 처음 세탁기를 설치할 때 기사님이 연결해 주시고 가면 세탁기가 망가져 새로운 것을 바꾸기 전엔 수도꼭지를 돌려야 하는 일도 없습니다.
최신형 세탁기 구입
몇 달 전 시영이는 대한민국에 와서 처음으로 구매했던 세탁기를 교체했는데요. 북한이라면 대대손손 재산으로 물려줄 세탁기이지만 10년 전에 구매한 통돌이 세탁기라 요즘 최신형 드럼 세탁기가 욕심이 났습니다.
드럼 세탁기는 뚜껑이 위로 열리는 게 아니고 냉장고 문처럼 앞으로 열리고 제가 구매한 것은 세탁기와 건조기가 붙어있는 일체형이랍니다. 한달이면 또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겠지만 현재 너무 만족하게 사용하고 있는 제가 제일 사랑하는 가전제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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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저녁으로 샤워하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저 가끔 동생이 오면 하루에도 세수수건 여섯장을 사용하게 됩니다. 매일 속옷도 갈아입고 거기에 이불케이스, 베개케이스, 침대 쿠션 소파쿠션, 방석 등등 일주일에서 혹은 한번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데요. 건조기가 없을 땐 늘 빨래건조대가 집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최근엔 빨래건조대가 집안으로 들어올 일이 없답니다. 세수수건, 이불, 침대 패드 ,쿠션 세탁기가 완료되는 즉시 바로바로 건조기에 넣으면 샤릉샤릉 말리고 마감엔 건조 완료를 알리는 노랫소리까지 나오고 빨래가 습기 차지 않게 문도 열어준답니다.
처음엔 너무 편해서 환호성을 올렸는데 최근에는 기계에서 모양을 잡아 정리까지 해주는 방법은 없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욕심까지 내고 있습니다. 아마 이곳이라면 욕심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제 이야기를 들으시는 청취자님들은 듣고도 믿지 못할 일이고 백문이 불여일견일 텐데 언제면 우리 함께 빨래건조기 이모님을 만날까요? 어머니는 빨래건조대에서 며칠에 한번씩 청소하게 되는 먼지 거름망을 보시면서 이불이 기계 안에서 찢어질 것 같다고 먼지가 아니라 원단이 닳아 떨어지는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낡은 것은 새것으로 교체
그래도 저는 너무 좋습니다. 모든 게 풍요로운 이곳에서 북한처럼 이불 하나 장만하고 몇십 년을 사용한다면 이곳 대한민국의 이불공장이 망할지도 모르니까요. 편리하게 사용하고 뽀송뽀송하게 사용하고 자주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면 찢어지기도 하고 보풀도 일어야 제맛 아닐까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빨래건조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고 좀 더 편하게 살려고 사용하면서도 나름대로 이유와 구실이 있지요.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탈북여성들은 누구나 집에 세탁기와 빨래건조대가 있습니다.
그들 중 고향에서 세탁기를 써본 경험자는 30 퍼센트도 안된다고 합니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엘리베이터 한번 타보지 못하고 세탁기는 그림으로 만 보고 수돗물 대신 우물이나 강물을 길러 밥 짓고 빨래하던 그녀들이 이곳에선 건조기 버튼 하나를 누르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탈북여성들은 대한민국이 고향인 여성들에 비해 전자제품 욕심이 엄청나기도 합니다. 북에서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이기도 한데 집마다 최신형 전자제품을 갖춰놓고 얼마나 알뜰하게 관리하면서 생활하는지 가끔 남한이 고향인 친구들은 북한 여성들은 깔끔하고 생활력 강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세탁기에 사용하는 액체 및 가루세제는 제품마다 다른 향이 나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향은 라벤더 향입니다. 향긋한 라벤더 향기가 배어 있는 뽀송뽀송한 이부자리에 들면 오늘도 고생할 북한 친구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들도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는데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
빨래건조기의 가격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데요. 청취자님들은 계산을 바로 하셨죠? 1,000달러 정도입니다. 세상에 탈북한 여자들이 돈벼락이라도 맞았나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초보적으로 한달에 200만원 정도는 생활비로 받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보다 적게 월급을 주면 고용법에 어긋나고 사장님이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탈북여성들은 두가지 세가지 일을 하며 돈을 열심히 벌고 있습니다. 이유는 전자제품도 사야지 또 아이들 학원도 보내야지 그리고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게 돈도 보내야지. 가끔은 여유도 없이 두 세 가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고단하기는 해도 그곳에서 고생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지상낙원에서 좀 힘들면 뭐라나고 말하는 탈북여성들입니다.
탈북하던 때를, 또 북한에서 살던 때를 생각하면 또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기고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 바로 이곳에서 자유를 누리는 탈북 여성들이지요. 언젠가 통일되면 고향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고 늘 마음속으로 연습하기도 합니다. 탈북이라는 용기 있는 선택이, 그래서 누리는 오늘의 행복 속에 고향이 늘 함께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아니라 직접 전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