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러시아와 새로 맺은 조약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의도란 분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28일 관영매체를 통해 대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한 북한 당국.
당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이름으로 낸 입장문에서 북한 군부대가 “국가수반의 명령에 따라” 쿠르스크 지역에 참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변상정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지난해 러시아와 맺은 이른바 ‘신조약’에 따른, 정상국가 간 행위였다는 점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변 실장은 ‘러시아·북한의 북한군 파병 공식 인정 배경 및 함의’를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쿠르스크가 우크라이나에 침공 당한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북한이 참전한 것은 신조약에 따라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취지라며 이같이 진단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향후 북한 군이 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에 투입될 경우 신조약을 벗어난 침략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쿠르스크 외 지역에는 진입하지 않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번 파병 인정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와 함께 ‘공동 교전국’ 지위를 확보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습니다.
북한 군 참전을 공식화함으로써 러시아와의 혈맹 관계를 부각하고, 향후 본격화될 종전 협상 당사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상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 김정은이 공동 교전국임을 실제로 확인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굉장히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쿠르스크 해방’을 선언한 시점에 북한과 러시아 양국이 공식 선언에 나선 것 같습니다. 양국이 서로 ‘윈-윈’한 그런 사건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변 실장은 북한이 참전을 인정함에 따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김 총비서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전쟁범죄 공범’으로 제소할 수 있게 됐다는 진단도 내놓았습니다.
앞서 국제형사재판소는 지난 2023년 3월 우크라이나 어린이 납치 및 강제 이송 책임을 물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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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 러시아 전승절을 전후해 김 총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한 것도 이번 참전 확인의 목적으로 제기됐습니다.
전승절 내지는 머지 않은 시기에 김 총비서가 러시아를 답방할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변상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이번 전승절에는 설사 최룡해를 보낸다고 해도 어떤 적당한 계기에 김 총비서가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향후 미북 협상이 성사됐을 때 적어도 북한 뒤에 푸틴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고, 그래서 조만간 한 번은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봅니다.
변 실장은 러시아 측이 북한 군에 표명한 사의 등을 공개하고 ‘전투 위훈비’ 건립 계획 등을 발표하는 등 북한 주민들의 동요를 차단함과 동시에 김 총비서를 우상화하려는 의도가 이번에 참전 사실을 확인한 목적에 포함돼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또 전쟁 종식 이후에도 북러 간 밀착이 지속될 것이며, 군사 뿐 아니라 전 분야에 걸친 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러, 국제사회서 군사협력 정당화 발언 계속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30일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 고위 안보 대표 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해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기한 제재를 검토할 것을 지지한다”며, 이른바 ‘신조약’이 한반도 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를 방문한 박영일 북한 군 총정치국 부국장이 같은 날 “쿠르스크 해방 작전이 승리로 끝난 것은 정의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등, 참전과 군사 협력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북한과 러시아 양측의 주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양성원